▲ 달리는 수행자 진오 스님(50. 경북 구미 대둔사 주지) 이 통일(탈북)청소년 11명과 함께 제주해안 220km 완주 도전에 나섰다. 스님은 달리면서 탈북청소년들은 미리 찾아온 작은 통일이고, 진정한 광복은 통일이라는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던졌다. 제주해안을 달리는 진오 스님 모습 ⓒ제주의소리
마라톤 수행자 진오스님, 광복절 맞아 통일청소년들과 제주해안 220km 도전
제68주년 광복절 아침. 한 무리의 마라토너들과 자전거를 탄 11명의 청소년들이 제주 서귀포시 표선면 ‘해비치 해변’을 따라 경쾌하게 내달린다. 광복절 아침, 유난히 이글거리는 8월 태양에 지치고 힘들 텐데 저마다 밝은 표정이다. 이들 마음속엔 폭염에도 굴할 수 없는 ‘통일’이라는 화두를 간절히 품고 있기 때문이다.   
‘달리는 스님’ ‘마라톤 수행자’ ‘기부 마라톤 스님’ 등으로 불리는 진오 스님(50. 경북 구미 대둔사 주지)이 제주와 구미에 거주하는 통일(탈북)청소년 11명과 함께 광복절을 기념하며 지난 13일부터 오는 17일까지 닷새간 스님은 마라톤으로, 통일청소년들은 자전거 라이딩으로 220km의 제주해안 완주 도전에 나섰다.
경북울트라연맹 김영화 회장과 최종한, 황철수, 이후근 회원, 구미우체국 직원들과 구미시자전거연합회 회원 등 일부 자원봉사자들도 이번 도전에 함께 따라 나섰다.
< 제주의소리>가 달리는 진오 스님에게 ‘왜 달리냐?’는 우문을 던졌다.
그는 “달리는 것은 제게 수행이고, 수행을 통해서 어려운 이웃들을 도울 수 있어 달립니다”고 했다. 진오 스님에겐 뛰는 것도 수행이오, 가부좌를 틀고 참선삼매에 드는 것도 수행이다. 어쩌면 참선하고 기도하고 뛰는 것 외에도 우리 사회에서 소외된 어려운 이웃들을 만나고 그들을 진심으로 돕고자 하는 모든 과정이 진오 스님에겐 수행일 것이란 생각이 스친다.
  
▲ 달리는 수행자 진오 스님(맨앞)의 이번 제주해안 220km 도전은 통일청소년 장학금과 이들을 위한 대안학교 설립기금 마련이란 희망 씨앗을 품고 있다.  경북 울트라연맹 회원들이 이번 진오 스님의 도전 길에 동행 중이다.    ⓒ제주의소리
  
▲ 자전거로 제주해안을 라이딩 도전하고 있는 통일청소년들. 제주와 구미에 거주하는 11명의 청소년들이다. 구미우체국과 구미시자전거연합회 회원들도 자원봉사자로 따라 나섰다.  ⓒ제주의소리
‘통일청소년’. 생소하다. 무슨 말이냐고 물었다.
“탈북청소년입니다. 근데 ‘탈북’이라하면 북한을 탈출해 남한으로 넘어왔다는 말인데, 실제 그들에게는 ‘탈북자’라고 하는 소리가 매우 좋지 않게 인식되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그들을 ‘탈북자’라고 소개하면 매우 불편해하고 부끄러워하는 것을 여러 번 봤고, 또 우리 스스로도 탈북자라고 하면 낮춰보는 경향도 분명히 있습니다. 정치적 망명이고 단순한 공간적 이동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들은 실제 찾아온 작은 통일이고, 미리 온 통일이기에 저부터라도 ‘탈북’ 북한 주민들을 ‘통일 주민’으로 불러야겠다고 생각했고, 탈북청소년들을 ‘통일청소년’으로 부르는 겁니다”
미리 온 작은 통일. 광복절 아침에 만난 ‘작은 통일’들. ‘격한’ 공감이 찾아온다. 진오 스님에게 광복절에 통일청소년들과 한반도 최남단 제주해안을 뛰는 소감을 다시 물었다. 
“저는 광복절이 그냥 광복(光復)으로만 그쳐선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진정한 광복은 통일입니다. 68년전 그 날. 우리 부모, 조부모들이 일제치하에서 벗어나 광복을 맞을 때 지금의 분단국가를 상상이라도 했겠습니까? 남쪽도 통일에 대한 의지가 부족해보이고, 북쪽도 체제유지에만 급급했지 통일을 진정으로 원하는지 의문입니다. 그렇다면 북쪽을 잘 아는 통일식구 2만5000여명을 말 그대로 ‘관리’만 할 것이 아니라, 우선 우리가 잘 보살피고 배려해야 합니다.”
그렇다. 진정한 광복은 ‘통일’ 아닌가. 진오 스님 이야기에 다시 몇 번이고 고개가 끄덕여진다.
이번 제주해안 220km 도전은 진오 스님의 국토완주 2000km 도전의 한 과정이다. 이미 지난해 국토 4대강을 따라 1000km를 완주했다. 제주해안 완주를 마치면 1220km를 마치는 셈이다.
  
▲ 달리는 수행자 진오 스님(50. 경북 구미 대둔사 주지). 제주해안을 따라 달리던 그가 돌하르방을 만나자 손으로 하트를 그리며 "통일가족들과 다문화가족들을 사랑해주세요"라고 말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마라톤을 수행 방편으로 삼는 스님은 이번 제주해안 완주에 ‘통일청소년 장학금’과 이들을 위한 ‘대안학교 설립기금’ 마련을 목표로 내걸었다. 이미 스님은 다문화 한부모가족 모자원 건립을 위해 2011년 한반도횡단 308km, 2012년 베트남 500km, 그리고 올해 4월 독일 700km를 도전하면서 자신의 페이스북 등 소셜네트워크를 통해 1km 마다 100원씩 성금을 모금해왔다.  
10년전 건강 때문에 우연히 시작한 마라톤. 그러나 수행이라 생각하면서 국내·외에서 지난 10년간 달려온 길이 무려 2300km나 된다. 일반 마라톤 풀코스인 42.195km를 무려 55번이나 달린 셈이다. 그러나 한번 달리면 스님은 이번 제주 도전처럼 보통 200~300km의 초장거리 울트라마라톤을 완주해낸다.
이번 제주 도전은 진오 스님이 경북 구미에서 운영 중인 통일청소년 생활공간인 ‘오뚜기 쉼터’ 청소년 중 대학 진학을 앞둔 강은미(가명) 양의 학비 마련과 광복절을 맞아 통일청소년들과의 제주해안 일주 도전이라는 소박한 계획으로 시작됐다.
그러나 통일청소년들에게 맞는 맞춤형 대안학교 설립이 궁극적 목표이기에 진오 스님의 ‘달리는 수행’은 제주 도전 이후에도 계속된다.
“제게 달리기는 수행입니다. 제 도움이 필요한 누군가에게 나눠줄 물질적인 풍요가 제겐 없고, 몸과 마음밖에 없습니다. 제 몸을 살라 뜻을 성취하게 하는 촛불과 향처럼 저도 제 몸이 힘들고 지치지만 다문화가정과 통일가족 등 어려운 이웃들을 도울 수 있어 이렇게 달립니다”
한 가지 당부도 남겼다. 스님은 “다문화가족도 그렇고 통일가족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미국이나 유럽 등에서 온 외국인에게는 매우 친절하고 호의적인데, 동남아 등에서 온 다문화가족에겐 왜 하대하고 다른 잣대를 들이대나요. 통일가족들에게도 색안경을 끼지 말고 있는 그대로 우리 동포, 우리 국민으로 대해야 합니다. 그분들은 먼데 있지 않고 우리 가까이 아주 가까이 있습니다. 달리면서 만나는 분들에게 이런 메시지도 전하고 싶습니다” 
사실 진오 스님도 26년 전, 경북의 한 공군부대 군법사로 있던 시절 교통사고로 한쪽 눈의 시력을 잃는 장애를 겪었다. 갑작스러운 사고였다. 그로 인한 절망감이 컸다. 하지만 군법사인 자신의 말 한마디와 작은 위로에도 큰 위안을 얻는 다른 환자들을 보고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희망이 될 수 있음을 깨달았던 것이다.
그래서 군법사를 마치고 난 후에도 불교간병인회와 ‘자비의 전화’를 통해 아픈 군인들을 보살피고, 2002년에는 구미에 외국인 근로자 쉼터 ‘보현의 집’을 만들며 외국인 이주민들에게까지 ‘나눔’을 키워왔다. 달리는 스님이 되면서 그 나눔도 더 커져가고 있다.
진오 스님은 현재 사단법인 ‘꿈을 이루는 사람들’을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 남편의 폭력에 시달리거나 남편을 잃은 결혼 이주여성들과 통일주민(탈북민), 그리고 한국에서 어렵게 생활하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들을 위한 쉼터를 운영하며 우리 사회로부터 소외된 이웃들을 보듬고 있다. 68주년 광복절 아침, 진오 스님과 통일청소년들의 꿈을 향한 도전이 제주에서 계속된다. <제주의소리>